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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어떤 이야기를 삶 속에서 써 오고 있는가, 어느 지점에서 막혀 있는가를 보려면 지금까지의 자기 역사를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오윤은 자기 자신,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조부모 대의 스토리를 정탐하면서 자신의 불안과 우울, 중요한 관계에서 겪는 어려움의 기원을 하나하나 파헤쳐 간다.
우리나라 현대사는 대략 70년 안팎이기 때문에 조부모 대까지만 해도 식민지 해방과 6.25 전쟁 및 남북 분단의 경험이 그들의 삶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그런 격동기 가운데 생존한 조부모에게서 양육된 부모에게는 또한 고유하면서도 보편적인 아픔이 서려 있다. 그리고 그 부모 아래서 큰 저자는 ‘원인 모를’이 아닌 ‘원인이 있는’ 상흔이 자신의 내면에 남을 수밖에 없음을 자기 뿌리의 스토리를 알아가면서 이해하게 된다. 역사는 사건과 숫자를 기록한다면 문학은 그 사건 속 개인들의 내면과 삶을 기록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역사에서 시작하여 문학으로 접어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저자의 역사의 키워드가 무얼까, 생각해 보았다. 전라도, 비주류, 어머니. ‘전라도’에서부터 저자에게 비주류로서의 뿌리가 깊게 내린 것이니 전라도와 비주류는 그에게 같은 키워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에 동의하고 싶지 않지만, 그리고 이런 나라가 꼴통 같지만. 그러나 ‘어머니’. ‘어머니’의 냉담함으로부터 형성된 불안과 우울은 비주류로서의 결핍과는 좀 다른 것이다. 어머니의 냉담함을 추적하기 위해 어머니의 가족사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순수소설이라 해도 믿길 정도다. 어머니가 왜 그런 성격이 되었는지, 혹은 아들인 저자에게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설득력 있게 묘사된다. 어머니의 결핍의 기원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아들인 저자가 어머니를 한 인간으로서 보게 하는 데, 마흔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정감 있는 엄마가 필요한 내면아이와 헤어지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아버지와 전라도는 밀착 관계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저자의 할아버지 형제들은 빨치산이었다. 빨치산이었기 때문에 죽었고, 할아버지는 빨치산 형제들 때문에 살해당했다. 누군가가 ‘저놈 빨치산입니다’라고만 해도 근거 없이 붙들려가고 처형당할 수 있는 시대였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했고, 이러한 빨치산 트라우마, 전라도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살아오면서 무던히도 노력해야 했다. 아버지의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전까지 이러한 은폐된 내력을 모르고 있었고, 그때까지 전라도 출신이라 하면 승진도 안 되고 변방으로 밀려나야 하는 아웃사이더로서의 운명,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전라도니까 싫어하는 사람들의 절룩이는 마음장애를 그저 자신 안에 내재화하여 살아야 했다. 그러나 아버지를 종용하여 모든 진실을 알아낸 이후에야 저자는 자신이 아버지의 삶과 운명을 뛰어넘을 수 없었던 한계 지점을 알게 되고 어느 정도 놓여난다.
한 사람 안에 켜켜이 쌓여 온 아픔과 상처는 필시, 그 사람의 애정 관계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그는 자신이 사랑 앞에서 왜 주저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연인이나 아내에게서 어머니를 바랐는지, 날카로운 메스로 살을 발라내듯 정교하게 분석한다.
나는 한 사람의 모든 상처의 원인을 유년 시절의 기억으로만 환원시키는 데에는 반대한다. 저자는 이런 식의 환원에 멈추지 않고 부모와 조부모의 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들의 상처를 한 도화지 안에 모두 펼쳐놓는다. 시대와 역사적 배경이, 그리고 동시대인들의 상처와 잘못이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에 어떻게 뿌리 깊은 흔적을 남기는지를 이 책은 사진처럼 증명해 보여 주는 듯하다. 나 역시 저자와 비슷한 연령의 동시대인으로서 한편으론 그의 아픔의 지점에서 내 아픔의 지점을 발견했고, 한편으론 시대적 배경의 짐을 진 그의 아픔에 나는 무심함의 무게를 얹음으로 한몫을 하지 않았나 자성해 보았다. 무엇보다…나도 자기 역사 쓰기를 통해 나 자신으로부터 가벼워지고 싶다는 욕망이 인다.
치유 글쓰기, 자기 역사 쓰기 작업의 기준을 제시하는 책
우리 내면에 살아있는 지역감정이라는 유령에 관한 이야기!
이 책은 마흔 살 대한민국 남자인 저자가 임상 역사학자 이영남 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며 쓴 [자기 역사 쓰기] 작업 결과물이다. 저자는 30대 후반이 되었을 때 불편한 내면과, 갈등으로 치닫는 관계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의 객관적 모습은 대한민국 표준 직장인이지만 내면의 주관적 삶은 불안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그는 마음의 문제를 해결해보기로 결심하고 아내와 함께 인문학 강좌를 들으러 다녔다. 그 과정에서 임상 역사학자 이영남 선생님을 만나 자기 치유 작업의 일환으로 삶의 역사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추천사 / 내가 만난 오윤 / 이영남 _009
작가의 말 / 나를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_014
프롤로그 서울 2010_019
1장 세상을 만나다 1976?2002?2006
눈 내리던 새벽_027 세상은 나를, 나는 세상을 거부했다_030 서른 살, 잔치는 끝났다_036 나는 엄마의 사랑을 원한다_041
2장 기억의 첫 단추 1980?1981
전라선_053 빛과 그림자, 외갓집 칠보_058 원호원 아줌마_063
3장 어머니와 아들 1934-1973
나 아파 아파_073 엄마의 언니_079 사랑을 모르던 엄마_091
4장 아버지와 아들 1939-1985
목포의 눈물_107 아버지의 아버지_117 전라도의 모스크바_124 침묵의 고향_130 빨갱이라는 주홍글씨_134
5장 전라도, 그 잿빛 기억 1986-1989
전라도 전학생_147 회색빛 도시_152 차별받는 일등의 고장_158
6장 전라도 아이, 세상의 아웃사이더 1996?1998
스무 살, 욕망의 민낯_167 우리는 왜 아웃사이더가 되었을까?_173 상실의 시대_181
7장 그림자는 빛에서 태어난다 1991?1994
짝사랑_189 흩어지고 바래지는 이야기_197 마이크 앞에 앉은 원숭이_203 이길 수 없는 아버지_210 비가 내리지 않는 그늘, 노량진_216
8장 병든 사랑의 도시 1995?2010
오윤의 사랑_225 강한 여자_229 시험에 든 사랑_233 사랑에 맹목적인 여자, 사랑에 수동적인 남자_240 싸움의 공식 그리고 남겨진 흔적_249
9장 변방과 중심의 경계에서 2000?2010
계급과 소속_255 변방에서_258 전라도 죽이기 와 강준만_265 세상의 에이스가 되기 위해_273 워커홀릭의 뿌리_282 서울과 함께 신음하다_287
에필로그 삼청동 2015_291
참고문헌_306
첨부 / 자기 역사 쓰기란 무엇인가/ 이영남_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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